- 저자
-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 출판
- 청송재
- 출판일
- 2022.02.22
상대방을 화가 나게 자극하라. 화가 나면 올바로 판단할 수 없고, 자신의 정점을 알아차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에게 노골적으로 부당한 일을 하고, 괴롭히고, 일반적으로 뻔뻔하게 나옴으로써 상대방을 성나게 만들어라.
책 <쇼펜하우어의 논쟁적 변증술> 中
화가 나면 정상적인 사고가 안 된다. 화가 나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도 그럴 수 없게 된다. 화가 나면 순조롭게 마무리할 수 있는 일도 그르치게 된다. 나의 화만 다스려도 일을 그르칠 일은 없다.
논리 정연한 사람도 화를 내게 하면 결국 그 논리 정연함은 사라지고, 태산 같은 사람도 한번 화가 나면 그 태산이 산사태가 나며 무너진다. 세계적으로도 이런 경우는 너무 많아 찾아보기 힘들다. 굳이 거창한 예시를 찾을 필요도 없이 당장 나 자신을 보면 알 수 있다.
나도 한번 화가 나서 아르바이트를 그만둔 적이 있었다. 대학을 다니면서 기숙사에서 지냈다. 그리고 기숙사엔 식당이 있었는데 그 식당에선 식기 닦는 아르바이트가 있었다. 나는 그 아르바이트를 지원했다.
처음 아르바이트를 할 땐 일을 시작하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것이, 빠르게 식기를 닦는 것이, 식기세척기에 닦은 그릇을 넣고 다시 꺼내서 진열하는 것이, 일을 마무리하면서 남은 찌꺼기를 처리하는 것이 힘들었다. 그리고 주방의 이모들은 얼마나 억세시던지... 조금만 힘들어해도 금방 쓴소리가 돌아왔다.
저녁에 하면 그나마 괜찮은데, 아침엔 다른 사람들보다 빨리 일어나야 한다는 점이 힘들었다. 피곤에 절어 있는 몸을 얼른 깨우고 아르바이트를 준비하고 마무리를 해야 했다. 다행히 아침엔 밥을 먹는 사람이 적었기에 저녁보단 수월한 편이었다. 그러나 아침이나 저녁이나 아르바이트를 하고 나면 항상 음식물 쓰레기 냄새는 아니어도 뭔가 은은하게 사람의 기분을 나쁘게 하는 냄새가 났다. 그 냄새도 처음엔 힘들었다. 샤워를 해도 뭔가 찝찝한 느낌이 있었으니까.
그래도 다행히 내겐 일머리가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일을 빠르게 그리고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했다. 물론 혼자 터득한 건 아니고 같이 하는 동료의 노하우를 전수받기도 했다. 또 잘하는 사람을 따라 하기도 했다. 그렇게 처음엔 힘들었던 일도 척척 해내게 되었다. 주방 이모들의 인정은 덤으로 따라왔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주방 이모들이 원하는 아르바이트생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로 들어온 신입 여학생이 있었다. 처음엔 그 학생에 대한 별 생각이 없었지만, 일을 같이 하게 되면서 뭔가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 여학생은 일을 설렁설렁하고 대충 했던 것 같다. 그러니 자연스레 내가 할 일이 늘어났다. 나중엔 두 명이 해내면 될 일을 나 혼자 하게 되었다.
솔직히 처음엔 '초보니까 그럴 수 있지'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괘씸함을 느꼈고 같이 일을 하면 할수록 화만 났다. 결국 나는 그 화를 참지 못하고 잘 다니던 아르바이트를 갑자기 그만두었다. 그리고 그 이유를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아르바이트 근무를 관리하던 사감님도, 주방 이모들도 갑자기 내가 아르바이트를 그만둔다고 하니 의아해했지만, 끝까지 그 이유를 누구에게도 말해주지 않았다.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별로 화를 낼 상황도 아니었던 것 같다. 그 당시엔 20대의 치기 때문에 화가 치밀어 올랐던 것 같다. 그 화를 참지 못해 얻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화를 잘 참았으면 계속 아르바이트를 계속할 수 있었고, 용돈 벌이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별 것 아닌 화 하나 때문에 용돈벌이의 수단을 잃었다.
시간이 지나고 다시 그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이미 떠난 배는 돌아오지 않았다. 이미 아르바이트 지원자가 다 차서 더 이상 아르바이트를 할 수 없었다. 나중엔 4학년이 되면서 기숙사에 살지 않고 자취를 하거나 통학을 했기에 그 아르바이트를 할 수 없었다. 정말 고작 화 하나 때문에 첫 아르바이트의 경험이 느닷없이 마무리되었다.
어쩌면 그 여학생은 내게 일부러 화를 내도록 했던 건 아닌 건 같다. 일부러 그런 것이었다면 진작에 주방 이모들이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러면 사감님의 귀에 흘러갔을 것이며, 그 여학생이 아르바이트를 그만두는 것으로 다른 결말이 펼쳐졌을 것이다.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논쟁을 할 땐 상대를 화나게 해야 한다. 화가 난 상대는 자신의 화에 못 이겨 논쟁에 지게 될 것이다. 내가 화 하나 때문에 잘 다니던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게 된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역으로 말하면, 다른 사람과 논쟁을 하거나 토론을 할 때 혹은 대화할 때 내가 먼저 화를 내면 진다는 결론도 낼 수 있다.
먼저 화를 내면 진다. 그러니 나의 화를 다스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사진처럼 화를 버릴 수 있는 화장실을 하나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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