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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ing/인용문 에세이

책 <몽테뉴의 살아있는 생각> - 온전한 나만의 공간 확보하기

by 리딩잇팅 2025. 4. 3.

 
몽테뉴의 살아있는 생각
노벨문학상의 수상자이자 우리에게도 익숙한 앙드레 지드는 스스로 여러 번 밝힐 정도로 몽테뉴 『수상록』의 열렬한 독자이다. 그는 “그에게 완전히 빠져들어 그가 바로 나 자신인 것 같다”는 말을 남겼다. 그는 예일대에서 발행하는 잡지에 몽테뉴를 탐구한 글과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은 『수상록』의 일부를 발췌한 글을 실었고, 그것이 한 권의 책이 되어 출간되었다. 앙드레 지드는 이 책의 1부 ‘몽테뉴는 누구인가’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몽테뉴에게 영향
저자
앙드레 지드, 몽테뉴
출판
서교책방
출판일
2025.01.01
서재는 나의 공간이자 나만의 왕국이다. 이 안에서 나는 온전한 통치권을 휘두르며, 아내나 자식, 지인들, 그 모든 공동체에서 벗어나 혼자 지내려 한다. 그 밖의 다른 곳에서는 본질적으로 분명하지 못한 그저 말뿐인 권위만 가지고 있다. 집 안에서 온전히 자기 자신일 수 있는 곳, 특별히 아끼는 장소나 마음대로 숨어들 수 있는 곳을 갖지 못한 자는 비참할 것 같다.
책 <몽테뉴의 살아있는 생각> 中

영화에서 지적인 캐릭터는 항상 자신의 서재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자신의 서재에서 책을 읽으며 연구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 캐릭터에게 있어서 서재는 온전한 자신의 공간이다. 움베르토 에코라는 학자는 다방면으로 연구를 활발히 하는 학자로 유명한데, 그는 집에 아주 커다란 서재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 서재가 어지간한 도서관보다 방대한 책을 보유하고 있고 다양한 책을 보유하고 있을 정도니 단순한 집의 서재로 부를 수 없는 수준이라고 한다. 움베르토 에코가 자신의 서재에서 찍은 몇 장의 사진을 구글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서재가 엄청 커서 책장의 높이도 높도 그 수도 많다. 그래서 책을 꺼내려고 사다리를 타는 사진이 있다. 아니면 사다리에서 책을 찾아보거나. 

우리에게 <수상록>이라는 제목으로 유명한 몽테뉴도 가문의 성에 있는 서재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애초에 <수상록>이 작성된 장소가 그의 서재다. 공직에서 은퇴한 이후 가문의 유산을 물려받고 가문이 보유한 성에 딸린 서재에서 몇 년간 쓴 글을 한 데 모아 엮은 것이 <수상록>이다. 몽테뉴는 하루 종일 자신의 서재에서 책을 조금 읽으며 자신의 생각을 조금씩 글로 적어 옮겼다. 그가 적은 것처럼 그의 서재는 그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그의 온전한 공간이었다. 그는 혼자서 생각을 하며 글을 쓰며 자신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렇기에 <수상록>이라는 두꺼운 책을 저술할 수 있었다.


현대인은 자신이 온전하게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이 없다. 자신의 방에서 혼자 있는다고 해도 완전히 혼자 있을 수 없다. 수많은 메신저, SNS, 콘텐츠 플랫폼이 방의 한 공간을 차지한다. 사실 방 한 공간을 차지하는 게 아니라 방 전체를 차지한다. 현대인은 혼자 있고 싶어도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공간을 내줄 수밖에 없다. 현대인에게 온전히 혼자 있는 시간은 이제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 현대인은 어디 멀리 사는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이다. 물리적인 공간에서 혼자 있으려 해도 통신적으로는 혼자 있을 수 없다. 혼자 있으려 해도 곧장 울리는 스마트폰의 진동, 알림음이 나의 혼자 있는 시간을 빼앗는다. 그리고 그런 방해 요소가 내가 온전히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을 점령한다. 

현대인의 불행은 온전히 혼자 있을 수 없다는 점이다. 몽테뉴의 서재와 같은, 온전히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이 없다. 언제나 타인의 감시나 혹은 타인의 관심에 시달린다. 그러다 피곤에 찌들어 잠에 든다. 타인의 눈길에 나에게 끊임없이 닿는 한 현대인의 피로는 결코 풀리지 않을 것이다.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을 타인에게 점령당한 현대인에게 더 이상 자신만의 공간은 없다. 그래서 어쩌면 현대인은 자신의 몸에 맞는 아주 작은 공간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대학원 시절에 6개월 동안 고시원에서 지낸 적이 있다. 고시원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아주 좁은 공간이고 사람답게 살기 힘든 공간이다. 물론 내가 지냈던 고시원도 그런 곳이었다. 바깥을 향한 창문도 없어서 형광등을 켜지 않으면 어두 컴컴하고, 벽간 소음이 제대로 잡히지 않아서 옆에서 뭘 하는지 다 들리고, 혹여나 내 방에서 어떤 소음이 새어 나갈까 봐 아주 조용히 지냈다. 그나마 위안이라고 한다면 내가 머물던 고시원은 다른 고시원 방에 비해 조금 더 넓었다는 점이다. 건물의 구조상 건물을 지탱하는 기둥이 있어서 기둥을 피해 방을 만들어서 다른 방에 비해 조금 더 넓었다. 고시원을 가고 싶어서 간 건 아니었다. 나도 원룸을 얻고 싶었다. 그런데 학기가 시작되고 갑자기 대학원 사무실 조교로 뽑혔고, 급하게 주변의 자취방을 알아보려 하니 빈 방이 없었다. 그래서 고시원으로 향했다. 그나마 고시원은 빈 방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고시원 생활은 매스컴에서 떠들어대서 많은 사람들이 고시원 생활의 불편함을 다 안다. 그런데 난 그 고시원 생활을 퍽 좋아했다. 고시원 방은 다른 자취방에 비해 작았지만, 난 그 좋은 점이 좋았다. 그 작은 방이 나만의 온전한 공간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나를 위해 만들어진 고치나 캡슐 같은 느낌이어서 아늑한 느낌을 받았다. 방이 아늑하게 만들어져서 그런 것도 아니고 방 분위기가 아늑해서 그런 느낌을 받은 게 아니다. 단지 내가 나만의 작은 공간이 생겨서 아늑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그 고시원 생활을 추억하기 위해 방 사진을 몇 장 찍어뒀다. 혼자 지내면 방이 큰 것보다 차라리 조금 더 작은 게 낫다. 큰 방에 혼자 있으면 괜스레 쓸쓸해진다. 그리고 허전하면서 동시에 어떤 날은 무서움도 느낀다. 그런데 고시원 방은 작았기에 허전함을 느낄 수 없었고 무서움도 느끼지 않았다. 드디어 온전히 혼자 있을 수 있는 방이 생겼다고 생각하니 그 작은 고시원이 전혀 작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 고시원을 나는 좋아했다.


타인의 눈길에 치이는 지금 이 세상에서 자신만의 공간을 확보하는 것은 나를 위한 아주 중요한 결정이다. 몽테뉴가 자신의 서재에서 <수상록>을 저술했듯이 우리도 온전히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그 공간에선 그 누구의 눈길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타인의 눈길에서 해방되어 자신을 온전히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몽테뉴에겐 서재, 나에겐 고시원 방이었듯이 타인의 눈길에 피로감을 느끼는 현대인에겐 바로 그런 공간이 필요하다.